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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Goldfish
2015. 4. 17. 09:32
주체
김 주 대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
나오지 못하는 무슨 말 입안에 물고 어눌할 때
나뭇가지 끝 단풍이
바람을 끌어와 입술처럼 팔랑거리며 소리를 낸다
나의 입술은 나뭇가지 끝에 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낮술 마시는 행려자의 야윈
엉덩이가
시멘트 바닥에 차갑게 젖을 때
느닷없이 서늘해지는
나의 엉덩이는 나도 모르게 시멘트 바닥으로까지 넓어진다.
더러 나는 살갗의 밖으로 나가거나
적어도 거기까지 확장된다
종이박스를 리어카에 잔뜩 싣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노인의 굽은 허리를 밀어드린 뒤부터
허리가 아프다
노인의 허리까지가 나의 허리였던 거다
저녁 산을 넘어가는 햇살이
세상을 돌아보며 어두워질때
붉게 충혈되는 눈은 밤으로 가고 있다
어둠이 와서 잠들면
반딧불 깜박이는 눈빛으로 고단한 꿈을 꾸다가
나의 눈은 어둠의 끝까지 깊어진다
죽음을 지고 노동자가 고공에 오를때
아찔해지는 나의 발바닥과
노동자의 헐멋은 이마에 붉은 띠가 묶일 때
불현듯 현기증에 시달리는 나의 이마
나는 나의 바깥이거나 바깥까지이다
나의 몸이 아득하게 넓어질 때
눈물도 밖으로 흘러나와 제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나는 나의 오래된 바깥까지이거나 오래된 바깥이다.
'그리움의 넓이' 창비, 2012년 pp 25~27